그는 쫓기는 어둠에서도 침묵했다. 얼굴도 이유도 모르는 칼이 자신을 향해 있는 것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또 한번의 칼이 눈썹에 닿을 뻔 스쳐지나간다. 그는 칼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지른다. 허걱~하는 소리를 내며 또 한 놈이 쓰러진다. 다른 칼들이 순간 긴장한다. 그는 쓰러진 칼의 목을 밟는다. 우둑~, 목부러지는 소리였다. 다른 칼들의 움직임이 잠깐 멈췄다. 두려움이 느껴진다. 지금까지 쓰러진 놈이 셋. 첫번째 놈은 팔을 부러뜨렸고 두번째 놈은 허리가 그리고 지금 이놈은 목을 부러뜨렸다. 죽을지도 모른다. 잔혹해 보이는 행동을 하는 건 그가 화가 났다는 거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가 낮은 소리로 그랬다. “병신되기 싫으면 연장꺼내지 마. 연장꺼내는 순간 사는 거 포기하게 할테니까.” 그땐 웃었지만 그가 몸으로 무너뜨리고 밟는 놈들이 생겨날수록 그만한 공포가 싹트고 있다. “시끄러, 개새끼야 !” 다른 칼이 몸을 튕겨 그에게로 향한다. 팔뚝 길이만한 사시미 칼이 가로등에 빛났다. 파란 날이 차가워 보인다. 잠시 옷깃이 부딪치고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동안 다른 칼들은 행동하지 않았다. 떼로 몰려가 작살내는 현장에서 움직임을 멈췄다는 건 포기나 공포 둘 중 하나에 빠진 상태였다. 사시미도 그랬을텐데 약을 먹은 모양이다. 몇몇은 자신의 공포를 없애기 위해 작업 전에 약을 먹곤 했는데 사시미도 그랬나보다. 하지만 결과는 어깨가 빠지고 오른쪽 다리 아킬레스 건을 베였다. “내 손에 사시미가 있다. 지금 쓰러진 놈까지는 살 수는 있을꺼야. 하지만 지금부터는 아냐. 내가 좀 화가 났거든.” 조용해졌다. 낮은 그의 목소리는 골목 가득 메운 이들에게 충분한 공포를 안겨줬다. 이때껏 그는 연장을 쓰지 않기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연장을 들었다면 끝을 본다는 거였고 딱 한번 그가 연장을 사용했던 5년 전을 떠올렸다.
열 명 남짓 되는 애들이 그를 찾았던 5년 전, 한 놈을 상대로 열 놈이 힘들고 지쳐가자 어떤 놈이 칼을 꺼냈는데 그때 그랬다. “연장쓰면 중환자실 말고 영안실이야.” 그리고 그날 네 놈이 영안실 향 냄새로 사라졌다. 오히려 처음 칼을 꺼냈던 놈은 늑골 네 개만 부러졌는데 같이 갔던 놈들이 병신을 만들어 버렸다고 했다. 그래서 그를 향한 주문은 이때껏 한번도 시장에 나온적이 없었다. 아니, 나올 수 없었다. 그가 이 시장 최고의 킬러였으니까. 그런데 오늘 서른 명에게 똑같은 주문이 배달되었다. 그를 시장에서 없애라. 망설이다 떠난 놈도 있었고 받자마자 이 바닥을 뜬 놈, 권총을 구매했다는 놈 등등 스무 놈 쯤 될까 오늘 이 골목에 모였던 것이다. “씨발 Jo까 !” 침묵 끝에 여러 놈이 그에게 달려 들었다. 두어 놈은 칼을 버리고 골목을 떠나는 거 같았고 남은 몇 놈은 달려드는 놈들을 쳐다볼 뿐이었다. 옷깃이 부딪치고 뼈와 칼이 어울리고 있다. 두 놈이 쓰러졌고 한 놈이 벽에 기댄 채 스스르 중심을 잃어 갔고 어떤 놈은 피가 뿜어져 나오는 목을 잡았고 다른 놈은 배와 입으로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역한 피 비린내가 한꺼번에 코를 찌른다. 그제서야 아까부터 비명이 난무하고 벽과 바닥이 피로 칠갑되어 있었던 걸 알 수 있었다.
쇠 파이프며 벽돌, 끽끽 칼끼리 힘을 겨루느라 귀를 파고드는 쇳소리가 일순 조용해진다. 많은 놈들이 싸우다 나자빠지고 베이고 꺽이고 부러지는데 얼을 빼고 자리에 못박고 서있는 세 놈 사이로 그가 지나간다. 그도 피를 쏟고 있는 중이었고 다리를 절뚝이느라 똑바로 걷지 못했으며 호흡도 상당히 거칠게 불규칙했다. 지금 그에게 달려가면 벨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했을텐데 세 놈은 움직이지 않았다. 골목에서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놈이 “저, 저 새끼…”라며 기어나오려는 듯 했지만 그대로 엎어졌다. 다른 놈들도 끅끅 무언가 말하고 싶어 했지만 들을 수 있는 말을 꺼내진 못했다. 한참동안 골목은 피 비린내와 끅끅 숨 넘어가는 신음 소리로 가득했다.
그를 이 바닥에서 제거하지 못한 골목 대전이 타인의 목숨 값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회자되는 동안 시장엔 몇 가지가 변했다. 어중이 떠중이 머릿수만 채우던 이 바닥 킬러 좃문가들이 줄었고 덕분에 주문 단가가 꽤 높아졌으며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놈들이 많아졌다. “거 봐라, 한번 희생으로 이 정돈데 한번 더 하면 어떨까?” 그가 골목 대전에서 얼빠진 채 마지막에 서있던 한 놈에게 말하고 있었다. “형, 또 한다고?” “단가는 올라갔는데 칼밥먹는 놈들 많이 없고 양아치들도 이 시장엔 신경 안쓰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