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에 가까운 매력녀들
쓰다보니 애매한 글귀가 되어버렸다. 매력녀들이 ‘무제’에 가깝다니.. 이게 무슨 수학의 미분도 아니고 매력녀들이 ‘무제’에 수렴한다는 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말인즉은 이렇게 구성되었다. 매력녀들 이미지를 업로드하려 그 공통점이나 주제를 찾다보니 허탕을 쳤고 그걸 ‘무제’라는 단어로 뭉뚱거렸다는 거다.
이쯤에서 궤변 하나를 들어놔 볼까한다. 서양에서 말하는 ‘미美’가 실은 아시아에 근원을 두고 있다는 내 개인적인 주장이다. 헛소리의 근원은 중세 이후 현대라 일컬어지는 산업혁명 이후부터다. 요즘 흔히 보는 패션쇼에선 갸날프고 마른 체형들이 대세이다. 마른 사람을 선호하다보니 사망까지하는 모델이 나올 정도로 민감하다. 원인은 서양 여인네가 가지지 못하는 아름다움이 날씬함이라는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에 서양 여인네의 비만은 건강을 떠나 추하게 여겨지고 그렇지 않아야 아름답게 느끼는데 아시아에선 평범한 몸매가 서양 여인네에겐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어디선가 읽은 ‘아름다움의 기원’에는 ‘낯선’ 것도 포함된다고 했다. 서양의 아름다움은 풍만함이 오랫동안 지배적이었다. 여러 그림에서 보여지듯 여인네들은 풍만하고 선굵은 것을 아름다움으로 전해 내려왔다. 하지만 산업혁명이후 풍만함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어울리지 못해 둔하고 굼띤 것으로 전락해버린다. 여자의 사회 활동이 커질수록 풍만과 후덕은 거추장스러웠고 뒷처지는 방해 요소가 되었으니까.
코르셋이니 원피스니 하는 옷들을 시작으로 미니스커트나 비키니같은 옷들이 인싸템으로 등극하는 과정도 이런 아름다움의 변화속에서라고 난 생각한다. 풍만과 후덕이 가지지 못한 ‘낯선’ 개념은 바로 아시아의 ‘날씬’한 것이었으니까. 그녀들이 볼 때 아시아의 날씬함은 부러웠지만 그렇다고 기죽기 싫었던 그녀들이 택한 것은 인격 차별 주의.
서구 나라들이 아시아를 속국처럼 경제적으로나 국력으로 지배하다보니 여인네들까지도 아시아 여인들을 시녀나 하녀 혹은 노예처럼 생각하는 천한 우월주의에 빠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 우월함이 ‘아름다움’까지도 영속되는 것으로 여겼지만 실상 마음속에는 ‘날씬함’을 열망하는 ‘낯선’ 아름다움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