艾淼(애묘)
어설픈 한문 실력으로 ‘아, 고양이를 사랑한다’는 뜻인가 보다 했다. 허나 淼, 이게 아득할 묘란다. 그 옛날에 아득하다라는 단어를 어떻게 생각해냈을까? 그리고 어떤 때 아득함을 느꼈을까 했다.
쓰이는 단어를 보니 淼淼 – 바다 따위가 넓고 끝이 없어 아득함이란다. ㅎㅎㅎ, 미묘한 표현이다. 묘묘라…
* 예전 게시물을 오늘 날짜로 바꾸고 몇 개의 이미지를 추가한다. 기술적인 문제가 있어서다. 이해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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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性)은 사실 노출과 큰 연관 관계가 없다. 아예 없지는 않아서 ‘남자는 누드에 여자는 무드에…’라는 말처럼 남성에게 조금 더 많이 부여되는 작용일 수 있다. 하물며 전쟁 속에서는 노출은커녕 정서적 불안과 위험한 상황 속에도 사랑을 나누게 되니 말이다.
요즘 분위기를 봐도 그렇다, 노출이 심한 옷차림이나 노출을 많이 해서 연애 감정이 생겼다거나 연인을 만났다는 얘기를 들어 봤는가? 이른바 MZ 세대가 이 말을 듣는다면 ‘뭔 쌉소리야?’ 할 가능성 100퍼다.
언제인지 시스루 옷차림이 인기였던 때가 있었다. 무얼 말하는 걸까? 시원하게 다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겹겹이 입어 하나도 안 보이는 것도 아닌 반 투명한 옷차림에 열광한 이유가 뭘까?
사람의 뇌가 앞서 생각했기 때문이다. 뭔소리냐고? 남녀 사이의 은밀한 관계가 이루어질 때 맨 마지막 작업이 무엇인가, 속옷이라는 육체와 육체 사이의 마지막 벽을 없애야 하는 것이다. 하다보니 속옷은 대부분 부드럽고 얇고 친환경적이다.
얇음을 강조한 반 투명 소재의 겉옷을 사람들은 속옷의 내밀한 정서와 일치시켰고 한번 더 눈길이 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니, 속옷을 겉에 입었다고 부끄럽지 않아, 무얼 생각하고 그런 차림으로? 별의별 생각 속에 나름의 상상력을 더해 가며 말이다. 시스루 의상 뒤에 아무리 두꺼운 옷을 입어도 제일 처음 눈길을 사로잡은 시스루 의상을 통해 은밀한 무언가를 봤다는 생각에 휩싸이지 않았을까? 우리의 뇌는 광속보다 빠르게 감정에 충신이다.
인간의 원초적인 감성을 성(性)에 연관맺는 방법 중 가장 확실한 방법은 시선이다. 특히 남자에게 시각은 확실한 각인이고 확인이다. 내 말이 잘못될 수는 있어도 틀리지는 않았다고 혹자는 얘기해줄 것이다.